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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인생맥주를 만난 순간, Once in a Bluemoon

트랜스포터 2020년 9월 15일 15

※ 본 컨텐츠는 맥주잡지 트랜스포터 9호(2020년 여름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모든 컨텐츠에 대한 저작권/소유권은 ‘맥주잡지 트랜스포터’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배포를 금합니다.

[9호] 인생맥주를 만난 순간, Once in a Bluemoon

맛집 관련 리뷰를 보면서 가장 흔히 마주치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인생’. 인생치킨, 인생라멘, 인생피자 등 ‘인생’이라는 단어가 범람하는 요즘이다. 누구나 쉽게 내뱉는 유행어의 무게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꼰대아재라 그런가) ‘인생’쯤 되는 단어를 쓰려면 어느 정도의 스토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웃자고 던졌는데 죽자고 받아 낸 딱1인분씨의 인생 맥주 스토리를 풀어본다.

감히 ‘인생’이라는 단어를 붙여 말하는 그 맥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딱 1인분씨의 미국 로드트립 피날레를 장식했던 그날의 기억(이라 쓰고 대참사라 읽는다)을 떠올려야 한다. LA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가기 전,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 들르기 위해 인근 팜스프링스 지역에 짐을 풀었다. 팜스프링스에서 처음 마주한 하늘은 이러했다.

팜스프링스의 이 세상같지 않은 석양

기나긴 운전시간을 보상해 주는 듯 석양이 비추는 하늘빛은 영롱함 그 자체. 아니 석양이 이런게 말이 되냐고!요!

생전 처음 보는 기묘한 석양에 이끌려 카메라 하나만 둘러메고 다시 차에 올랐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기에 정처 없이 포토 스팟을 찾아 헤매던 중, 흘끗 눈에 들어 온 풍력발전소 풍경에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뛰어나가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바로 그 오묘했던 시간, 인생샷을 건지고 싶었던 욕심에 차를 어디다 세웠는지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은 후 슬슬 배도 고프고 다시 시내로 들어가려 차에 올랐다. 그런데 후진을 하는 순간 바퀴가 헛돌며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쌔한 기분으로 황급히 내려보니 벌써 이런 상태…

후진을 하면 할수록 바퀴는 모래 속으로 파고들 뿐이고, 지나가는 차도 전혀 없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가 라스베이거스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니 911에 신고해보라는 유익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 친구 하나 잘 뒀네, 라는 비아냥거림이 목전까지 올라왔지만 고맙다 말하며 전화를 끊고, 다른 방도가 없겠다 싶어 결국 911에 전화해 더듬더듬 위치를 설명했다. 20분 정도 후에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건장한 보안관님이 본인 키보다 훨씬 더 큰 픽업트럭에서 내리면서 인사를 건넸고, 안전 상의 문제로 견인이 완료될 까지 대기하겠다는 말에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렉카를 불렀으니 기다리면 된다고 하여 10여분쯤 있었을까, 왠지 카를로스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지만 라티노라는 이름을 가진 선한 인상의 남자가 렉카를 끌고 나타났다. 그리 길지 않은 작업 끝에 모래 구덩이에서 차가 힘없이 딸려나와 도로로 쑥 올라온다. 흑흑, 감동의 눈물이 쓰나미처럼 밀려 온 순간. 고마움에 눈물을 그렁거리며 거의 직립보행하는 강아지처럼 앞발을 들고 카를로스 아니 라티노에게 달려가 감사 인사를 하고 계산을 하는데 그의 말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나한테 바로 연락했으면 반값이었을텐데 911에 연락하는 바람에 160달러라고. 놀리는 듯한 어투는 덤.

그래 실컷 놀려라 놀려!

어찌되었건, 사건은 해결되었고 나는 홀가분했다. 이 시간에 달려 온 두 사람에게 앉은뱅이 절을 하고, 다시 차에 올라 시내로 향했다. 어느덧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고, 그제서야 밀려오는 서러움과 허기에 눈에 보이는 아무 레스토랑이나 들어가서 착석했다.

내가 들어간 샤방샤방한 아메리칸 레트로 감성의 레스토랑이 ‘루비스 다이너’라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라는 것을 인지한 것은 메뉴판을 받아 든 후였다. 햄버거든 뭐든 지금 어떤 음식이 맛있지 않으랴. 음식을 주문하며 갈증을 달래기 위해 블루문 맥주도 함께 주문했다.

메뉴보다 먼저 서빙된 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는데, 폭풍같이 몰려왔던 서러움이 풍성한 거품과 함께 녹아 내리듯이 승화되어 카타르시스가 밀려온다. 거품에 밀려간 서러움의 자리를 메운 청량한 탄산감이, 기분의 기포를 방울방울 업시켜주고, 은은하게 느껴지는 시트러스함은 지쳐있던 심신을 다독이며 위로해 주는 것 같다. 동시에 블루문 특유의 쌉쌀한 고수 맛은 인생은 원래 쓴맛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블루문이 이렇게까지 요물이었나? 요물이어도 괜찮아.

말동무도 없었던 나홀로 여행에서,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듯한 블루문 벨지안 화이트가 인생동무가 되어버린 그 순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피식’이라는 두 글자로 압축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하고 싶었던 말이 세헤라자데가 풀어낸천일야화보다 많았다. 말 한마디 없이 그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준 블루문 벨지안 화이트. 최근에도 딱1인분씨의 동무로서 1일 1깡하는 일상을 함께 해주고 있다. 앞으로도 곁을 지켜줘, 나의 블루문!

Written by. 딱1인분씨

‘딱1인분씨의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여행가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전대미물 천상최하 유아독거남. 음식과 술을 위해 싱글 라이프를 영위해 나가는 희대의 식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