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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맥주맛 표현가이드 feat.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트랜스포터 2020년 7월 15일 352

※ 본 컨텐츠는 맥주잡지 트랜스포터 9호(2020년 여름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사진 및 글을 포함한 모든 컨텐츠에 대한 저작권/소유권은 ‘맥주잡지 트랜스포터’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배포를 금합니다


맥주맛 표현가이드

feat.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들숨에 맥주의 향을, 날숨에 맥주의 풍미를

입술에 닿는 차가운 맥주의 온도, 혀로 느껴지는 단맛, 치아와 혀 사이에서 뒹굴며 부서지는 맥주의 감촉,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까지 끊임없이 입천장을 타고 올라와 코를 자극하는 쌉쌀한 향까지. 입과 목구멍을 통해 코로 전달되는 냄새와 감각에 우리가 느끼는 ‘풍미(맛, flavor)’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치맥을 떠올려보자. 갓 튀긴 따끈따끈한 치킨의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짭짤한 닭 비린내, 기름기를 가득 머금은 바삭한 껍질, 치킨의 느끼함을 부숴버리는 맥주의 탄산과 쌉쌀한 홉. ‘맛있다’ 혹은 ‘맛없다’는 한마디가 전두엽(언어, 감정, 기억, 논리적 사고 판단 등을 관장하는 뇌 영역)에 떠오르기까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나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수많은 얼굴 속에서도 아는 얼굴은 쉽게 찾아내듯 우리는 삶에서 경험한 풍미를 기억하고 구분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디선가 맡아본 향인데? 뭔가 낯익은데? 분명 한 번쯤 먹어본 듯한 향긋한 과일 향이 나더라도, 그것이 이제껏 맥주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향이라면 쉽게 그 향을 표현할 만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와! 맛있다’만 연발하고 만다.
 
와인을 다루는 소믈리에의 자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미각과 후각의 예민함뿐 아니라 서로 다른 와인의 풍미를 단어로 표현해내는 능력에 있다고 할 정도로 맛의 표현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맥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몽, 파인애플 같은 과일 향에서부터, 장미와 같은 꽃 향기, 갓 구운 빵, 달콤한 달고나, 초콜렛 향까지 – 맥주의 풍미를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와 표현을 통해 지금 눈 앞에 놓인 한 잔의 맥주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표현해보자.

맥주의 맛과 향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들

■ 과일 향

감귤 계열 – 레몬, 오렌지, 자몽
열대과일 계열 – 파인애플, 망고, 파파야, 패션프루트, 리치
베리 계열 – 산딸기(라즈베리), 복분자, 오디(블랙베리), 블루베리
그 외 – 복숭아, 살구, 자두, 체리, 포도, 바나나, 멜론
말린 과일 향 – 건포도, 건자두, 건대추(대추야자)
 
■ 꽃 향기 – 장미, 제라늄, 재스민
 
■ 그 외

솔 향, 탕약, 비 온 뒤의 숲 향
갓 자른 잔디 향(풀 향), 차 향, 송진 향(나무 공방 냄새)
구운 빵, 생밀가루 반죽, 술빵, 고소한 크래커, 캐러멜, 달고나, 꿀, 옥수수,
커피, 초콜릿, 콜라, 위스키, 오크 향, 후추, 계피, 수정과, 정향

도대체 무슨 뜻이지?
맥주의 맛을 표현할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들

호피hoppy – 말 그대로 홉(hop) 향이 많이 난다는 의미다. 하지만 홉은 쓴맛 뿐 아니라 솔 향, 열대과일 향, 꽃 향, 차 향 등 다양한 향을 내기 때문에 ‘호피하다’라는 말만 가지고는 맥주의 향을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로 미국식 IPA 스타일 맥주에 자주 쓰는 표현이기 때문에 맛은 상당히 쓴 편이면서 솔 향, 열대과일 향, 레몬, 오렌지, 자몽 향을 가진 맥주일 가능성이 높다.


당크dank, 펀전트pungent – 당크는 홉과 같은 과에 속한 대마초에서 영감을 받은 말로, 본디 품질 좋은 대마초를 뜻하는 속어다. 당크와 펀전트는 맥아의 단맛과 홉의 쓴맛, 과일 향과 효모의 발효 향이 어우러져 형용하기 어려운 강한 맛이 느껴질 때 쓰는 표현. 주로 알코올 도수가 상당한(7도 이상) 더블 IPA 같은 맥주의 풍미를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한다. 과할 때는 고양이 오줌 향과 비슷해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맛이다.
 
펑키funky, 타르트tart , 탄지tangy – 한마디로 쿰쿰한 향. 람빅, 괴즈와 같은 자연발효 맥주는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치며 브레타노미세스brettanomyces와 같은 발효균에 의해 특유의 복잡미묘한 발효 향을 머금는다. 신선할 때는 동치미, 잘못하면 쉰 걸레 같기도 한 이 향을 펑키, 혹은 타르트하다고 한다.

주시juicy – 홉의 쓴맛과 솔 향/풀 향보다는 과일 향이 강조된 경우 많이 쓴다. 뉴잉글랜드 IPA와 같이 드라이 홉을 많이 한 맥주를 두고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크리스피crisp , 드라이dry – 라거와 같이 쓴맛이 적절하면서도 맥아의 단맛이 약해 상쾌함이 느껴지는 맥주. 이런 맥주를 두고 ‘크리스피하다’, ‘드라이하다’라고 한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자극적인 음식과는 오히려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맥주 자체의 맛이 강하지 않아 음식 맛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른 안주와는 찰떡궁합이다.


한 잔의 맥주를 마시더라도 더 음미해야 하는 이유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지금 우리의 맥주 세계는 ‘시원한’, ‘톡 쏘는 탄산이 가득한’ ‘생맥주 한 잔’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 다양한 맥주를 경험하며 ‘파인애플과 구아바 향이 가득한 페일 에일’, ‘새콤하고 짭짤한 끝 맛이 갈증을 풀어주는 고제 맥주’, ‘은은한 커피 향이 느껴지는 스타우트’를 기억하고 표현해낸다면 우리의 맥주 세계는 한층 넓고 풍부해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기억만큼 우리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지 모른다. 한 잔의 맥주를 마시더라도 더 음미해야 하는 이유,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Written by. 음미하다 @eummihada


어릴 때 제사나 명절에 어른들이 한 잔씩 따라주시던 음복주의 씁쓸하지만 달콤한 그 맛과 즐겁게 마시던 분위기, 적당히 취기가 오르던 나른한 오후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한창이던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천여 가지 맥주를 맛본 생물학자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맥주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를 썼습니다. 우리의 크래프트 맥주가 우리의 음식과 문화가 되어, 맥주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 당당하게 ‘나는 맥주가 취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맥주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맥주 잡지 “트랜스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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