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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아카데미 운영을 종료하며

트랜스포터 2021년 3월 24일 111

※ 본 컨텐츠는 맥주잡지 트랜스포터 11호(2021년 겨울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사진 및 글을 포함한 모든 컨텐츠에 대한 저작권/소유권은 ‘맥주잡지 트랜스포터’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배포를 금합니다.

[12호] 아카데미 운영을 종료하며

아카데미가 문을 닫습니다.
현재 국내 수제맥주 업계에는 약 150여 곳의 양조장이 운영되고 있는 반면, 맥주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은 전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한 가지 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자면, 본인이 운영하던 어메이징브루잉 아카데미도 2020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운영을 종료하였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19의 유행과 그에 따른 2단계 영업 제한 조치 등은 기존의 펍이나 양조장 등의 맥주 관련 업장에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아카데미의 경우는 피해가 더욱 심했는데, 기본적으로 학원이라는 곳은 다수의 사람이 모여서 배움을 나누는 일이기에 집합이 필수불가결한 장소이고, 온라인 수업으로의 전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타 과목과는 달리 맥주 시음이나 양조 등은 랜선으로 대체하기가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크나큰 악재는 학원 운영을 종료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양조사가 되지 않은 이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2009년부터 ‘살찐돼지의 맥주 광장’이라는 맥주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3년에 독일 베를린의 VLB Certificate Brewmaster 코스를 다녀왔습니다. 이러한 이력을 바탕으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을 오픈하는 커리어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업계의 기대가 있었으나, 크래프트 맥주 펍 ‘사계’의 운영 이후에는 맥주 교육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기껏 양조를 배워놓고 왜 써먹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기에, 왜 맥주교육업에 매진하게 되었는지 잠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나 취미에 돈을 더 투자하기 마련입니다. 요즘에는 편의점에 국내 수제 맥주들이 3-4캔 만원에 판매되며 접근성이 높아져 맥주 취미를 갖는 사람들이 늘고는 있기는 하나, 편의점에 판매될 수 있는 맥주 스타일은 한정적입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정착된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수제맥주는 결국 페일 에일, IPA, 밀맥주 수준에서 고착화 될 수도 있습니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수제맥주 시장이 형성되려면 소비자들이 마시기 편한 편의점 수제맥주로 시작해서, 보틀샵이나 펍에서 판매되는 작은 업체들의 맥주들에도 관심을 갖도록 연결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병에 3,000 원인 맥주를 주로 마시던 사람들이 맥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맥주를 취미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5,000-6,000원인 맥주를 소비하는 데에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맥주에 대한 교육과 로컬에 대한 가치에 대한 인지가 필요합니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도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이어나가기 위해 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을 수제맥주로 끌어들이고 정착시키려면 크래프트 맥주의 통상적인 업무인 생산과 판매에서 더 나아가 행사, 교육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더라도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맥주에 대해 잘 알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역할을 수행해줘야 하지만, 주 5-6일 일하는 양조사나 펍 매니저에게 따로 짬을 내서 양조장 자체 시음회 등을 수행하게 한다면 지속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 양조장에서 해당 업무를 전담할 인력을 뽑기에는 ‘과연 수익이 나올 수 있을까?’, ‘월급만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등의 의문이 남기에 양조, 영업, 매장 인력을 충원하는 쪽으로 결론이 납니다.

본인이 예전에 운영했던 비어포럼이나 사계 펍의 시음회, 교육 이벤트 등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러 사람들이 성장하여 현재 수제맥주 업계에서 큰 동량이 된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고, 이러한 활동들이 시장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2014년 주세법 개정 이후 양조장 업체 수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서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많아진 반면, 이벤트를 통해 맥주를 알리는 사람은 극히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맥주 교육을 전업으로 하기로 결심하였을 때는 내면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양조사로 좋은 커리어를 쌓으면 월급은 안정적으로 받을 텐데..’, ‘아무도 하지 않은 맥주 교육일인데 이게 될 거라고 고용주에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한편, ‘나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앞으로 전업으로 맥주 교육업을 하려고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고민 끝에 교육에 힘을 쏟기로 결정을 내려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메이징브루잉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2016년 설립된(년도 확인 필요) 어메이징브루잉아카데의 주 목적은 전문 인재를 기르는 것보다는 맥주 초보 분들을 수제맥주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었기 때문에, ‘맥주 시음코스’와 ‘초급 홈브루 양조’ 와 같은 기초 강의 위주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아카데미 운영 이전에 이루어지던 맥주 교육은 대부분 이벤트성 강의였고, 모집공고가 맥주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올라왔기 때문에 이미 맥주에 관심이 많고 사전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주로 신청했지만,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모집군이나 의뢰처가 공기업이나 사기업, 원데이 클래스 플랫폼 등등으로 넓어졌다는 점도 기초 강의에 비중을 두게 된 이유입니다. 이렇게 아카데미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학생층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파울라너나 필스너조차도 낯설게 받아들이는 리얼 맥린이 수강생이 99% 였습니다.

이러한 대중 앞에서는 ‘난 이런 맥주 마신다!’ 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수제 맥주에 관한 흥미와 좋은 기억을 남겨 나중에 따로 사서 마셔보고 싶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스킬인 편하고 재미난 분위기 조성, 적당한 난이도 설정, 목소리 발성, 표정, 편협해보이지 않는 내용 등등을 연구하고 연마한 것 같습니다. 시작할 때는 지쳐서 금방이라도 졸 것 같은 직장인 참가자가 점차 눈이 초롱초롱해지더니 끝날 땐 박수갈채를 보낼 때, 그 때의 쾌감은 맥주 강의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이 때의 아드레날린과 보람에 대한 중독성이 커서 맥주 교육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성공적으로 강의를 마치게 되면 지속적으로 강의가 연결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쓴 일지만 보아도 550여회에 걸쳐 강단에 올라 약 7,000여명의 사람들에게 맥주를 알렸습니다. 이는 대략 2.6일에 한 번씩 맥주 강의를 진행한 셈입니다.

비록 2020년은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공기업, 사기업의 의뢰가 절반 이상 줄기는 했으나 다행히도 어메이징브루잉 아카데미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만으로 학원 유지를 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평년 같았으면 기업 의뢰 + 자체 프로그램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유지라도 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맥주 교육계의 플레이어를 기다립니다.

개인적으로 향후 맥주 교육 사업은 전망이 밝다고 생각합니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성장하고 있고 특히 편의점에 보급되며 맥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덕분에 양조장을 설립하려는 사람은 매년 등장하고 있습니다. 양조장 설립에 관심을 갖는 수강생들에게 단순 제조업이라는 마인드로 접근하면 매우 어려울 거라 조언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양조 사업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반면에 맥주 교육 시장은 오히려 너무 플레이어가 없어서 문제인 상황이며, ‘맥주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가르침 ‘이라는 전문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교육사업이라 앞으로도 경쟁사가 우후죽순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더불어 양조, 판매에 집중한 업체들이 머지않아 시장에서 포화에 이르게 되면 차별화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컨텐츠, 이벤트, 교육 등등이기에 마케팅의 일환으로라도 사람들에게 맥주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이야기꾼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맥주 양조사 동료들이 많고 양조사라는 직업을 존중하기에 당연히 양조사 지망생들의 꿈도 존중하지만, 향후에는 “맥주 강사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맥주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를 꿈꾸는 사람들도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록 과도기적 시장에서 탄생한 과도기적 학원인 어메이징브루잉아카데미는 2020년 12월에 막을 내렸지만, 훗날 코로나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더 이상 거리를 두지 않아도 될 때 맥주를 알리는 일을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부디 모두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잘 버티시길 바라며, 코로나 이후에 시장에서 보상받으시길 바랍니다.


<맥주잡지 트랜스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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