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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각양각색의 맥주잔, 어디에 따라마시면 좋을까?

트랜스포터 2020년 11월 17일 18

※ 본 컨텐츠는 맥주잡지 트랜스포터 10호(2020년 가을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모든 컨텐츠에 대한 저작권/소유권은 ‘맥주잡지 트랜스포터’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배포를 금합니다.

[10호] 각양각색의 맥주잔, 어디에 따라마시면 좋을까?

소설 ‘동물 농장’과 ‘1984’로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의 작품에는 종종 맥주가 등장하고 맥주잔에 대한 디테일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 ‘1984’ 속 미래의 펍에서는 파인트 잔 대신 500ml와 1000ml두 가지 잔만 사용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때문에 소설에 등장하는 한 손님은 ‘500ml는 너무 양이 적고 1000ml는 배가 부르다’며 왜 파인트 잔에 맥주를 따라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참고로 조지 오웰이 살았던 영국에서는 파인트잔(568ml)에 맥주를 따라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편, ‘이상적인 펍’에 대한 내용을 담고있는 오웰의 에세이에는 ‘물속의 달’이라는 이름의 가상의 펍이 등장하는데, 이 펍에서는 절대 손잡이가 없는 유리잔에 맥주를 담아주지 않는다. 그는 손잡이가 달린 도자기 잔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웰은 스타우트 맥주를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 그는 스타우트는 주석 잔에 따라 마셔야 제맛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조지 오웰의 말처럼 맥주잔이 맥주의 맛에 큰 영향을 줄까?

사실 와인과 달리 맥주는 술을 잔 끝까지 채우기 때문에 잔의 모양이 맛에 주는 영향이 적다. 하지만 마시면서 잔에 빈 공간이 생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잔의 형태에 따라 맥주의 향이 잔 안에 모이기도 하고, 빨리 공기 중에 날아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베를리너 바이세, 세종, 자연발효 맥주인 괴즈처럼 향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맥주는 입구가 좁은 잔에 따라 마셔보길 추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숨겨져 있던 맥주의 여러 향이 느껴지기 시작하기 때문. 반면 IPA, 임페리얼 스타우트처럼 향이 강한 맥주를 입구가 좁은 잔에 따라 마시면 그 향이 너무 강해 불쾌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향을 이루고 있는 휘발 성분의 농도에 따라 같은 물질이라도 다른 향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미국 서부식 IPA의 특징적인 향인 복분자나 포도 향은 그 농도가 짙을 경우 고양이 오줌과 같은 불쾌한 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물론 이런 ’펀전트’한 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이 경우에는 입구가 넓은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맥주를 좀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이다.

또, 맥주 용량에 맞는 잔을 사용하는 것도 의외로 중요한 포인트이다. 효모를 거르지 않은 맥주의 경우 캔이나 병 바닥에 효모가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밀맥주를 제외하고는 효모가 같이 딸려 나오지 않도록 한번에 천천히 잔에 따르는 것이 좋다. 이때, 맥주의 용량보다 작은 크기의 잔을 사용하면 여러 번 나눠 따르는 과정에서 효모가 맥주에 섞여나오기도 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미국에서 IPA를 서빙할 때 주로 사용하는 셰이커 잔은 음료를 직접 따라 마시는 용도의 잔이 아니다. 칵테일을 만들 때 사용하는, 그야말로 셰이킹(shaking)잔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유행했는지 알 수 없지만, IPA를 셰이커 잔에 따라주는 것은 맥주 맛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IPA를 마시는 감성과 분위기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맥주잔의 특성을 알고 하나하나 용도에 맞는 맥주잔을 갖춰보는 것도 맥주를 즐기는 하나의 묘미 아닐까?

맥주, 굳이 잔까지 챙겨가며 마셔야 할까?

‘조선 좀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극 중 등장하는 다양한 조선 시대 갓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사실 햇빛을 가려주는 용도뿐이라면 굳이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갓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갓은 실용적인 목적뿐 아니라 신분을 표시하는 도구이면서 패션 아이템이기도 했다.

어쩌면 맥주잔도 갓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물론 맥주잔이 신분을 표시하는 도구는 아니지만, 맥주에 맞춰, 기분에 맞춰, 혹은 음식에 맞춰 다양한 잔에 맥주를 따라 마시다 보면 늘 마시던 맥주라도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한 번 더 맥주에 눈길을 주고, 한 번 더 맥주를 음미하다 보면 조금 더 맥주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도서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무단배포/전재 절대 금지)

Written by 음미하다 @eummihada
어릴 때 제사나 명절에 어른들이 한 잔씩 따라주시던 음복주의 씁쓸하지만 달콤한 그 맛과 즐겁게 마시던 분위기, 적당히 취기가 오르던 나른한 오후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한창이던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천여 가지 맥주를 맛본 생물학자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맥주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를 썼습니다. 우리의 크래프트 맥주가 우리의 음식과 문화가 되어, 맥주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 당당하게 ‘나는 맥주가 취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맥주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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